들어가며..
“The Korean gentlemen aim high as if intent on hitting unseen stars.”
“한국 신사들은 마치 보이지 않는 별을 쏘려는 듯 높이 쏘아 올린다.” 1901년 제물포로 들어와 서울을 여행하며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영화를 촬영하고 상영한 미국 여행가 버튼 홈즈(Burton Holmes 1870~1958)가 활쏘기를 보고 남긴 말이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하늘의 별을 따는 활쏘기!” 우리나라 활쏘기의 멋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저 멀리 이상(理想)을 향하여 쏘아 올리는 자아(自我).’ 활쏘기는 마음과 몸을 완전으로 올리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다. 순수 이성에 의해 갖는 최고의 가치에 이르는 길. 나 자신의 원형을 이루는 영원불변한 실재(實在)에 다다르는 길. 한 발 한 발 시위를 당기며 그 화살들에 나를 실어 보낸다. 무상(無想)하고 무감(無感)하게 내가 실릴 때도 있지만. 대체로 시위 떠난 화살에 온전히 실리기는 쉽지 않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비전(飛箭)에 실어 보낼 때의 그 즐거움은 다른 어디서는 찾을 수 없다. 오직 활쏘기에서만 나를 발견한다. 그 무아(無我) 속에서 나타나는 자아(自我). 비워야만 채운다는 성현의 말이 떠오른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이켜보면 꼭 활쏘기와 같다. 사대에서 한 발 한 발 온 힘과 온 정신을 다해 과녁에 화살을 날리지만 잘 맞지 않는 것처럼, 살아 온 삶도 잘 맞은 때 보다 잘 맞지 않았을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잘 맞지 않았다고 내 살아 온 삶을 부정하진 않는다. 왜냐하면 한 순간 한 순간 너무나 진정으로 살아 온 삶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실패를 하면서 살아왔던가! 혹시 그때마다 내가 아닌 타자에게 그 실패의 원인을 돌리려 한 적은 없는가? 활쏘기에는 ‘실저정곡 반구저기신(失諸正鵠 反求諸其身)’라는 말이 있다. 중용中庸에 나오는 말로 ‘과녁(정곡)을 맞추지 못하면 자신에게 물어본다’라는 말이다. ‘발이부중 반구제기(發而不中 反求諸己)’와 같은 말이다. 난 이 말이 좋다. 내 인생의 지혜이자 지침이다. 활쏘기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살며 힘들고 지칠 때 활을 쏴라! 그러면 어두웠던 나는 가고 새로운 내가 만들어진다. 새 힘이 난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처음으로 활을 잡았다. 스승님이신 야헌(野軒) 김경원(金慶元) 사범님(~2017)은 활쏘기를 제대로 아시는 분이셨다. 인사를 하실 때에는 깊게 허리를 숙이셨고, 사대에서 조차 자신을 낮췄다. 무명 바지저고리에 두루마기, 흰 고무신을 즐기셨고, 굳게 다무신 입처럼 활쏘기에 꿈밈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활쏘기에 담긴 우리민족의 풍류와 흥을 감추지 않으셨다. 2017년 어느 깊은 가을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까지 유일한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7호 장안편사놀이 보유자셨다. 활쏘기를 가족보다 사랑하셨다고 했다. 그분께 활쏘기를 배운 건 큰 영광이자 행운이다.
자주는 아니지만 활을 쏘며 여러분들을 만난다. 모두 훌륭한 분들이다. 그분들께도 많은 것을 배운다. 그러나 아쉽게도 문자로 만들어진 활쏘기는 제한적이다. 역사학적으로 인문학적으로 활쏘기를 보는 문자들은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지식과 감동을 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한 가지 부족함을 느낀다. 많은 분들이 활과 화살을 다루는 기술이 탁월하고 그것들을 다루는 몸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엄격하지만 과학적 접근에는 관대하다. 아마도 그분들이 알려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활쏘기에 필요한 몸의 움직임을 제대로 분석한 것들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활쏘기를 과학적으로 본 책들은 찾을 수 없었다. 활쏘기를 해부하고 숫자로하여 과학화한 이유이다.
활쏘기를 해부하고 과학화하기 위하여 자료를 수집했다. 『조선의 궁술』과 『사법비전공하』, 『임원경제지』는 두말할 나위 없이 활쏘기에 대한 많은 지식을 줬다. 집궁 50여년 경력의 16분들 활쏘기 방법(전통 사법)을 채록한 정진명·모창배 선생님의 2007년 논문도 좋은 길잡이었다. 활쏘기 동작을 분석하기 위하여 7년 이상 활쏘기를 해오신 열 분께 실험 참여를 부탁드렸다. 분석에는 국민대학교 이기광 교수님과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의 김태완 박사님이 노력해 주셨다. 이 모두는 내게 큰 영감을 주신 육사의 김기훈 교수님께서 주선해 주셨다. 이 모든분들이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면을 빌어 큰 감사를 드린다.
이 책은 칼로 자른 호박처럼 하나의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와 함께 유구히 흘러 온 활쏘기를 모두 담을 수도 없을뿐더러, 완전도 아니다. 2022년 어느 날의 활쏘기라는 하나의 덩어리를 잘라서 그 속의 일부를 보여줄 뿐이다. 부족할 것이고 모자랄 것이다. 제대로 자르지 못해 비뚤리게 보여준 것도 있을 수 있다. 자료도 부족하고 분석한 장비도 제한적이다. 그래서 부끄럽다. 그러나 작은 내가 모여 큰 강을 이루고 밀알이 모여 숲을 이루듯, 이런 부족한 글이라도 쓰일 때가 있으리라는 용감함으로 책으로 묶는다.
이 책에서는 활쏘기의 움직임을 이해하기 위하여 과학적 접근을 시도하였다. 몸의 구조와 함께 활쏘기 시의 움직임을 담당하는 근육 작용에 대하여 포괄적이면서도 간결하게 설명하려고 애썼다. 총 4개의 이야기로 구성하였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해부학적 기초를 이야기하고, 두 번째 이야기는 전통 활쏘는 방법에 대하여 자료를 모아 정리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이야기에서는 활쏘기의 동작과 힘 작용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분석하였다. 해부학 용어는 신용어와 구용어를 병용하였으며, 2회 이상 사용 시에는 신용어를 사용하여 편의를 도모했다. 대한해부학회 해부학용어(제6판)를 기준으로 하였다. 이렇듯 활쏘기에 대해 과학적이며 운동(움직임) 집약적인 설명들은 기존의 활쏘기 책들과는 차별화되는 내용이라 생각했다. 활을 배우는 여러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이 책에는 많은 삽화가 있다. 활쏘기를 해부하기 위해서는 잘게 자르고 내부를 드러나게 그려야 할 뿐 아니라 기능을 구조화하고, 복잡한 구조는 단순화해야 한다. 특히 활쏘기 동작은 고유하므로 예를 찾을 수 없었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이를 조경미, 내 아내가 해 주었다. 부족한 나와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특별히 감사하다. 영원한 조언자 가나시우 두 딸은 비평가이자 응원팀이다. 둘의 칭찬을 먹으며 책을 완성한다. 고맙다.
펴냄출판사는 도서출판 한미의학의 다른 이름이다. 의학서적뿐만 아니라 인체해부학, 운동생리학, 트레이닝 등 다수의 체육 관련 서적을 출판하여 체육학의 학문적 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출판사이다. 비인기 전통 문화임에도 불구하고 활쏘기의 중요성을 높이 평가하여 흔쾌히 출판을 허락해 주신 이광재 대표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또한, 완벽한 편집을 위해 수많은 교정을 마다하지 않고 이 책을 완성시켜주신 편집부 직원들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시위 떠난 화살처럼 오늘이 가고 있다. 수마도 폭염도 코로나도 가겠지..
제법 아침저녁이 선선하다.
이천이십이년 팔월 말
달빛마을에서 화랑정 사우 김창선
목차
첫 번째 이야기 - 활쏘기 해부학 1
첫번째 방 / 활쏘기의 해부학적 움직임 3
두 번째 방 / 우리 몸의 근육 37
세 번째 방 / 발과 다리의 움직임 55
네 번째 방 / 엉덩이와 허리, 목의 움직임 75
다섯 번째 방 / 손과 팔, 어깨의 움직임 99
두 번째 이야기 - 활쏘기 방법 145
여섯 번째 방 / 사대에 서기 147
일곱 번째 방 / 활쏘기의 실제 167
세 번째 이야기 - 활쏘기의 과학-동작 분석 199
여덟 번째 방 / 활쏘기에서의 몸의 움직임 201
아홉 번째 방 / 활쏘기에서의 중심 이동 221
열 번째 방 / 활쏘기에서의 수행 속도 229
네 번째 이야기 - 활쏘기의 과학-근력 분석 241
열 한 번째 방 / 활쏘기와 근육의 힘 243
열두 번째 방 / 활쏘기 시의 근 활성도 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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