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초판은 제가 미국에 연구출장을 하던 1995년에 저술되었습니다. 개정작업을 하는 동안, 이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던 20
년 전의 기억이 새로운 감회로 다가왔습니다.
그 때는 일반인은 물론 의료인조차도 심정지와 심폐소생술에 관한 관심이 거의 없던 시기였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심폐소생술의
중요성을 조금 먼저 인식했던 저는 이 책을 통하여 심폐소생술을 소개함으로써 심폐소생술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높이고자 했
습니다. 이제 이 책의 다섯 번째 개정판을 발행하는 오늘, 저는 지난 2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의 변화를 돌아봅니다. 이제 심폐소
생술이라는 용어는 일반국민들에게도 낯선 단어가 아닙니다. 심정지를 목격한 사람은 심폐소생술을 해야 생존율이 높아진다는 것
도 알고 있습니다. 공공장소나 군중이 있는 곳에는 자동제세동기(심장충격기)가 대부분 설치되어 있습니다. 심정지환자의 생존율
도 높아졌습니다. 20년 전에는 조사조차 되지 않았던 심정지 생존율이 매년 조사되고 있으며, 심정지환자의 5%정도가 생존합니
다. 그러나 심정지는 점점 더 중요한 국가보건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심정지 환자는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지난 한해에만 우리
나라에서는 3만 명의 병원 밖 심정지 환자가 발생했습니다. 심정지로부터 생존한 환자 중에서 사회에 다시 복귀할 수 있을 정도
로 회복된 사람은 전체 심정지 환자의 2%에 불과합니다. 국가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심정지환자의 98%는 살아나지 못하거나 사
회로 복귀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심정지는 다양한 원인에 의하여 심장활동이 갑자기 중단되어 발생하는 일종의 증후군입니다. 심정지는 현대 의학이 해결하지 못
하고 있는 증후군입니다. 응급의료의 수준이 최고인 국가에서도 심정지의 생존율은 20%를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정지에 대한
획기적인 치료법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리고 심정지 발생 후부터의 치료도 중요하지만, 심정지를 예방하는 것이 병원
밖 심정지에 의한 사망을 줄이는 더 좋은 방법입니다. 심정지의 치료에 대한 대책과 더불어 예방을 위한 정책이 필요합니다.
이번 개정판에는 2015년에 발표된 우리나라의 ‘심폐소생술 가이드라인’과 심폐소생술 국제연락위원회(International Liaison
Committee on Resuscitation: ILCOR)의 ‘2015심폐소생술과 응급심장치료’에서의 개정 내용을 반영하였습니다. 심폐소생술에 대
한 많은 연구에 근거한 새로운 심폐소생술 가이드라인이 심정지 환자들의 생존에 기여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책을 20년간 지켜오면서 많은 분들의 격려와 채찍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들의 관심이 없었다면 이 책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
니다. 환자 진료에 바쁜 가운데에도 이 책의 개정에 도움을 준 연세대학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의 응급의학과 동료들에게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20년간 이 책을 발행해 주신 군자출판사 장주연 대표께도 감사드립니다.
이 책이 우리나라의 심정지 치료환경을 개선시키는 데 기여하고, 그 결과로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심정지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면, 개정 작업을 위해 보낸 밤들이 제 인생의 가장 보람 있는 시간으로 남을 것입니다.
2016년 1월 4일
황성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