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건강통계 2015’에서 2013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한국의 자살 사망률은 29.1명으로 회원국
평균 12.0명의 두 배를 넘었다. 한국전쟁 이후 세계 경제발전사에서 한국이 톱을 차지할 정도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
을 이룩하였다는 것을 국민들 모두 실감하고 있지만, 이 이면에는 이런 엄중한 통계도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도 외면해서는 안 된
다. 좀 더 얘기를 진행해 보면 한국이 자살률 세계 3위라는 불명예, 2015년도 세계행복지수에서 조사 대상 143개국 중 118위,
OECD국민 행복지수에서 36개국 중 27위의 최하위 권에 맴돌고 있다. 우리들이 가진 부가 행복으로 연결되지 않고 불행을 낳는 아
이러니를 받아들여야 하는 다소 당황스럽게 하는 현실에 살고 있다. 부유함이 행복은 아니라는 명제는 세계적으로 불안과 스트레
스 등 각종 정신적인 질병이 늘고 있는 현상이 이를 대변해 주고 있으며, 세계보건기구(WHO)는 2020년 선진국에서는 우울증이 가
장 중대한 건강문제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는 현대인이 많다는 증거이다. 보건복지부가 2011년 실시
한 전국정신질환실태조사에 따르면 우울증을 평생 1번 이상 겪는 사람이 6.7%로 나왔는데, 이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
다. 아울러 조현병 같은 정신질환자의 치료에서도 병원에 가두는 방식이 아니라 선진국형의 재활, 직업교육 등 열린 공간에서 이
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실제 조현병은 지리, 문화적 차이에 관계없이 인구의 1% 정도에서 나타난다는 전제라면
2014년 10만4000명의 진료기록을 토대로 했을 때, 턱없이 부족한 숨은 환자들을 찾아내야 한다고 한다. 우울증과 조현병의 극단
적인 선택이 자살로 이어진다. 2003년과 2012년 생명보험통계를 비교한 결과에 의하면 이 10년간 자살로 인한 사망원인 순위가
여성은 26위에서 4위로, 남성은 11위에서 4위로 증가하였다. 한국이 최장수국가에 속하지만, 노인 자살률은 10만 명당 81.9명
(2012년)으로 세계 최고이다. 인간의 태어 난 삶을 자연의 섭리에 따르지 않고, 제 스스로 끝을 낸다는 것은 본인에게도, 그 뒤
남은 가족들에게도 크나큰 상처를 안겨주고 있다. 이와 같은 환경에서 자살이라는 피할 수 없는 문제를 어떻게 하면 줄여나갈 것
인가 하는 어젠더가 줄을 잇고 있다. 자살예방행동포럼, 한국자살예방협회, 중앙자살예방센터, 자살예방캠페인본부 등에서 자살
예방에 힘쓴다는 것도 자주 보게 되고,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에서는 자살이 청소년 사망 원인 1위이므로 자살고위험군에 속하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예방프로그램을 더 많이 진행한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미국에서는 중고교 필수과목으로 도입하고 있
는 ‘보건교육’에서 청소년 자살의 원인, 문제점, 예방법을 비중 있게 다룬다고 한다. 정신 건강과 관련된 지식이나 태도 수준
인 건강정보이해능력(health literacy)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이라 한다. 2013년 인구 10만명당 연령 표준화 사망률에서 13.2명
의 위암, 25.1명의 자살이라는 산술근거는 건강정보리터러시 수준에서 큰 격차가 존재한다고 전문가는 말하고 있다. 위암을 예방
하기 위해서는 관련된 검사나 생활습관에 대한 이해를 하거나 하려고 하는데 반하여, 위암으로 죽는 비율보다 훨씬 더 높은 자살
에 대해서는 외면하거나 무지로 일관하는 태도를 비판하는 데이터이다. 이제 우리들은 ‘자살학’이라는 단어도 낯설지 않게 되
고, 2015년 중앙심리부검센터가 발족되면서 ‘심리부검’이라는 단어도 생소하지 않게 되고 있다. 이런 시대 조류에 맞춰 일찍
이 자살학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온 일본의 저명한학자, 타카하시 요시토모 교수에 의하여 1992년, 자살에 대한 알파에서 오메
가까지 다루는 책이 나오게 된다. 본서는 2013년에 전면 개편한 3판이 나올 정도로 이 분야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자살학의 최
고 권위를 자랑하고 있다. 저자는 1958년에 심리부검이라는 개념을 명확히 한 미국의 자살학 태두인 에드윈 슈나이드먼의 제자이
기도 한데, 이제 갓 60세를 넘기면서 그동안의 수많은 임상경험과 지적편람을 온 몸으로 쏟아내고 있다. 특히 본인이 끌고 가고
자 하는 방향성을 잃지 않으면서 인용의 적확성을 견지하는 그의 글쓰기는 뭇 학자들의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 서예로 비교하면
일필휘지하는 그의 모습에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일본인 특유의 한 주제를 붙들면 좌고우면하지 않고 끝까지 놓치지 않는 모습
을 역력하게 볼 수 있다. 이런 명저를 일본의학서 30여권을 한국어로 번역하였다는 이력만으로 나에게 번역을 맡겨주신 군자출판
사 장주연 사장의 신뢰에 감사드린다. 한편 내 개인적 임상에서 2015년 봄날에는 특이한 두 케이스를 동시에 만나게 되었다. 이
들 두 사람은 우연하게도 40대 초반의 남성으로, 똑같이 번개탄을 피우고서 자살을 시도하였다. 그 후유증으로 발성저하로 대화
가 불가능하였고, 소변조차 가리기 힘든 상태로 치료를 하게 되었는데, 4개월 후에 한사람은 예전 직장으로 복귀하게 되고, 다
른 한 사람은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게끔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70대 얌전하였던 여성이 한 참을 두고 오지 않더니, 2년 뒤
어느 날 그 며느리가 와서 자살하였다는 얘기를 전해주었던 기억도 난다. 이렇듯 내과에서도 우울증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가 필
요하다는 생각을 실감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신경정신과에 대한 오해 탓으로 내과 플러스 정신과의 혼합 형태로 심료내과가 운영
되기도 한다. 그만큼 내과파트에서도 우울증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필요 할 것으로 생각되면서 이 책은 향후 모든 의료진들
의 필독서로 자리매김하였으면 한다. 번역을 하면서 요즘 젊
은 의사들의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서 일본 한자를 풀어쓰기를 시도 하였으며, 쉼표를 적절히 사용하여 이해를 돋우고자 하였다.
전문서적인 만큼 원어의 본 의미를 훼손하지 않고 충실하게 옮기고자 하면서도 독자들이 읽기 쉽도록 하고자 하는 두 가지 가치
를 지키고자 노력하였다. 번역 초고를 일독하면서 오류와 더불어 가독성을 체크하여 준 곽승혁 선생(한방
내과 전문의), 사용례가 까다로운 일본어에 자문해준 김현진 교수(일본문학 박사, 대학 강사)에게 감사의 말을 드린다.
도서목차
제1장 자살의 정의와 이론
I. 자살의 정의
II. 자살 예방의 3단계
III. 자살 이론
IV. 자살에 쫓기는 사람들의 공통 심리
제2장 자살 현상
I. 자살자수 추이
II. 남녀별 차이
III. 연령
IV. 일본 각 현별 자살률
V. 동기
VI. 국가별 자살 비교
제3장 자살 위험인자
I. 자살 위험인자
II. 자살 위험이 높은 전형적인 예
III. 자살 위험에 관한 평가 척도
IV. 생활사에서 살펴본 자기 파괴적 경향
제4장 정신장애와 자살
I. 기분장애
II. 알코올 의존증
III. 조현병
IV. 성격장애
제5장 신체 질환과 자살
I. 자살 위험인자로서 신체 질환
II. 특정 질환과 자살 위험
III. 증례 제시
IV. 내과에서 자살 증례 컨퍼런스의 경험
제6장 인생주기와 자살
I. 소아기
II. 사춘기
III. 성인기
IV. 노년기
제7장 자살 예방과 치료
I. 「자살하고 싶다」고 하면
II. 초진
III. 위기에 대한 집중 치료
IV. 장기 추적조사
V. 자살 위험이 높은 환자와 가족의 특징
VI. 인지요법
VII. 변증법적 행동요법
VIII. 자살 위험이 높은 환자에 대한 치료자의 반응
제8장 불행하게도 자살이 일어났을 때의 대응
I. 남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증상
II. 자살 후의 대응
III. 디브리핑(debriefing, 심리적 경험보고)
IV. 사후 대응(postvention) 사례
제9장 언론과 자살
I. 연쇄 자살(suicide cluster)
II. 인터넷 자살
III. 유화수소 자살
IV. 자살 보도
제10장 자살 관련 법적 문제
I. 과로자살 재판
II. 자살과 의료과실 : 미국 정신과의료에서의 방지책
제11장 학교에서 자살 예방 교육
I.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청소년의 자살 예방 교육
II. 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
III.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IV. 최근 미국에서 이루어지는 자살 예방 교육
제12장 건망과 자살
I. 전생활사건망이란?
II. 증례 제시
III. 건망과 자살
제13장 증례 검토
제14장 자살 예방에 관한 일본과 외국의 동향
I. UN/WHO 자살 예방 가이드라인
II. 핀란드의 자살 예방 대책
III. 일본의 자살 대책 기본법 성립과 그 후
IV. 자살에 관한 생물학적 연구
부록 1 자살예방에 대한 기초 체크 항목
부록 2 자살 예방의 십계명
부록 3 심리부검 실시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