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하면서
우리나라 한의학에서 한약물의 EBM이 이루어질 수 없는 환경은 규격화·표준화된 QC(quality control)가 부족할 뿐 아니라, 공
인된 처방집 조차 한 권 가지지 못 하였기 때문이다. 2010년을 맞이한 시점에서『동의보감』처방을, 혹은『방약합편』을 표준처
방집으로 한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각 한의과대학 부속 한방병원에서는 나름대로『한방처방집』을 가지고 있는데, 이 모두
비
매품으로 비밀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표준화된 한방 처방집에 대한 갈증이 나던 차 일본에서 가장 신뢰성 있는
『실용한방처방집』을 보고 번역하여 소개하기에 이르렀다.
이 책은 현대 일본 한방의학의 약물처방이 약 1,600개 수록되어 사전처럼 사용할 수 있으며, 아울러 오늘날 관점에서 필요한
처
방을 병명중심으로 정리하였고, 최근 유행한 중국처방과『동의보감』처방까지 포함시켜 한·중·일 3국의 국가를 초월한 전통의
학처방집으로서 가치가 있다. 처방이 가지고 있는 효능을 현대 의학적으로 해석하였으며, 증례보고를 아울러 소개하여 근거 중
심
에서 이탈하지 않고, 중요한 원문을 병기하여 문헌고찰 또한 소홀히 하지도 않았다. 오늘날 사용하지 않는 질병개념이 들어 있
는 것이 옥에 티다.
일본사회문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회의」하다가 한 평생 보낸다는 말이 있는데, 이들이 합의점을 도출해 내는 과정은 지루
해 보이기도 하지만, 일단 결과물이 나오면 몇 십 년은 유효하게 된다. 이번 번역작업을 하면서 우리들이 하여야 할「한방처방
규격집」에 대한 하나의 샘플로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일본 의사들이 공통의 처방집을 만들게 된 계기는 1960년대 개별 한약물 혹은 한방 복합처방이 보험에 들어가면서 정부기관의
요청이었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한방 복합처방 제제가 본격적으로 보험이 이루어지고, GMP 시설을 갖춘 제약회사들이 한방제
제
에 착수할 때, 적어도 한의계에서 공인된 처방집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환경 또한 문제가 될 수 있고, 한다고 하더라도
정해진 시일에 쫓겨 날림공사가 될 여지가 많다. 이 때문에 미리 한의계의 중지를 모아 한국 한의학을 대표하는 처방집을 마련
하
여야 한다. 곧 우리 모두 공유할 수 있는 우리의「한방처방집」이 나오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세상에「졸역」을 선보인다.
이번 번역작업에는 경희의료원 한방병원 2내과 의국원들, 변형식, 박주영, 임정태, 박수경, 윤승규, 권승원 선생들이 워드작업
을 하여주었고, 특히 권승원 선생은 초벌 번역을 혼자서 다 하다시피 하였다. 본서는 젊은 선생들의 짬을 낸 노력의 대가로 세
상
에 나오게 되었다. 신흥출판사의 영업부 김경수 차장과 편집부 박혜림 대리가 디자인 연구를 많이 하여 원본보다 더 깔끔한 책
이 나오게 되었다. 마음 속 깊이 고마운 마음을 표한다.
2010. 8
경희의료원 한방병원
연구실에서 조기호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