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내며
어린 시절부터 진지하게 품었던 두 가지 의문이 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와 ‘우
주란 무엇인가?’가 그것이다. 집마당에 돗자리를 펴고 누워 밤하늘을 쳐다보면서 지
구로부터 수억광년 떨어져 있다고 하는 저 별들도 우리가 볼 수 있는 우주의 일부라
는 생각을 하면 아찔했고, 우주공간의 끝은 어디인가? 전 우주적 개념에서 시간과 공
간이란 어떤 의미인가? 라는 의문을 가지면 가질수록 우주는 인간의 지식으로는 알
수 없는 경외의 대상 그 자체였다. 생명현상도 신비로웠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고, 생각하고, 번식하고… 비르효
(Rudolf Virchow)의 세포론, 파스퇴르(Louis Pasteur)의 미생물학, 다윈(Charles
Darwin)의 진화론, 와트슨(James Watson)과 크릭(Francis Crick)의 분자생물학은 신비
로운 생명현상의 베일을 벗겨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희망과 호기심을 가지고 의
과대학에 입학하고, 병원에서 전문의 과정을 밟았다. 그러나 신경과 전문의의 과정을
밟으면서 접한 신경계의 복잡성과 치밀함은 밤하늘을 보면서 느꼈던 우주에 대한 경외
감, 영원히 알 수 없을 것 같다는 절망감을 또 다시 느끼게 했다. 그 후 10년 동안 생
명에 대한 본질적 질문과 탐구를 접어 둔 채 환자의 진료에 매달렸다. 대학병원과 대
학원에서 현대의학의 발전에 기여하고, 논문에 발표된 최신 의학지식을 누구보다도 먼
저 체득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지만 완치되어 밝은 표정으로 퇴원하는 환
자보다는 진단명조차도 제대로 밝혀낼 수 없고, 치료방법도 제대로 없는 질병으로 고
통을 받고 있는 환자들─내일에 대한 희망을 찾아볼 수 없는 암 환자, 한 번 숨쉬는
것조차도 힘들어 보이는 피골이 상접한 노란 얼굴의 간경화 환자, 이렇게 사느니 죽
는 것이 낫다며 울부짖는 뇌졸중 환자, 자신의 의지대로 살수가 없어 향정신성 약물
을 먹고 어깨가 축 늘어져 의료진의 안내를 받으며 산책 나온 정신분열증 환자─이
더 많음을 진료현장에서 지켜보면서 좌절감과 절망감에 빠질 때가 더 많았다.
현대의학은 근대과학의 아버지 데카르트(Rene Descartes)의 분석적 사고─복잡한 현상
들을 작은 조각으로 잘게 나누어, 그 부분의 특성들을 통해 전체의 움직임을 이해하
는 생각─에 근거한 기계론적 생명관에 기반을 두고 발전해 왔다. 따라서 생명체는 하
나의 아주 정교한 기계이고, 이론상 그 기계는 가장 작은 부분으로 완전히 분해시킴으
로써 이해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 믿음하에 모든 생물을 구성하는
세포가 발견되었고, 세포는 또다시 효소, 단백질, 아미노산 등으로 분해되고 분석되
어 생명의 아주 작은 조각까지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생명은 그렇게 작은 조각으
로 나누어 들여다본다고 모든 것이 다 이해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 생
명은 그 부분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전체로서의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살아 있
는 시스템이다. 금세기 들어 과학은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패러다임에서 시스템적 패러
다임으로 전환되어 발전하고 있다. 시스템이란 ‘그 부분들 사이의 관계에서 본질적
인 특성이 발생하는 통합된 전체라는 개념을 가진다. 그러므로 시스템적 사고는 생명
현상를 포함한 모든 현상계를 보다 큰 전체라는 맥락 속에서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생명시스템의 본질적인 특성들은 전체에서 창발되는 특성이지 생명시스템을 구성하고
있는 부분들이 가지는 특성들의 산술적 반영(算術的 反映)이거나 단순한 총합(總合)
이 아니라는 것이다. 생명시스템의 전체로서 본질적 특성들은 그 부분들의 ‘조직관
계’, 즉 질서정연한 부분들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또한 그 본질적 특성은 그 시스템
을 구성하는 요소(부분 또는 조각)들이 분해되어 고립될 때 사라진다. 따라서 생명의
구성요소에만 매달려 발달해 온 기계론적 생명과학은 생명의 본질을 밝혀내는 데로부
터 동떨어지게 되었고, 그에 바탕을 둔 현대의학도 한계에 이르게 되었다. 이제 우리
는 괴테(Johann Wolfganng von Goethe)가 자연을 “하나의 조화롭고 거대한 전체”로
보았듯이 생명을 그렇게 보는 관점에서 생명을 다시 보아야 한다. “기계의 부분들은
서로를 ‘위해서’, 즉 기능적인 전체 속에서 서로를 떠받치고 있다는 의미에서 존재
할 뿐이다. 그에 비해 생물체는, 부분은 서로를 만들어간다는 의미에서 서로에 ‘의해
서’ 존재한다”라고 본 칸트(Immanuel Kant)적(的) 생명관에서 다시 출발하여야 한
다.
과학에 있어서 어떤 현상의 모든 국면을 다 설명하고 규명해 주는 한 가지 이론을 찾
아내는 일이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양자택일의 이론이 아닌, 둘 혹은 그
이상의 ?